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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 땅에 씨 뿌리며 봄을 기다리는 마음
운영자 2024-01-16 추천 0 댓글 0 조회 61

 

 

언 땅에 씨 뿌리며 봄을 기다리는 마음

이시준 장로

 

 땅의 생명의 숨소리가 일단 멈추는 추운 계절이다. 대하소설 토지의 박경리 작가는 가을이면 씨앗을 모으고 봄이면 씨앗을 뿌리며 한 톨의 씨앗이 수천수만 톨의 열매를 토해놓는 것을 보면 씨앗이 함축하는 창조의 신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작은 화단에 여러 종류의 꽃을 심고 가꾸다 보면 계절의 흐름을 피부로 느끼며 살게 된다. 무덥던 여름, 꽃이 만개한 화려한 시절도 보내고 꽃씨를 맺는 가을이 오면 부지런히 씨앗을 채취한다. 내년에 화단을 화려하게 장식할 준비를 한다.

 

 밖에 설치한 수도를 보온하고 배롱나무와 감나무에 냉해 방지 포를 감싸는 등 겨울 준비를 한다. 이웃집에서 튤립 구근(球根)을 두 손 가득 채워 건네주신다. 구하기 힘든 것인데 꽃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식재 시기에 맞춰 주었다. 튤립이나 수선화, 무수카리 등 구근식물은 보통 늦가을이나 12월 초순에 파종한다. 가끔은 왜 추운 날씨가 다가오는 동토의 계절에 씨앗을 파종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봄에는 씨 뿌리고 가을엔 거두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순리인데 그게 아닌가 보다.

 

 품종에 따라 심는 시기가 각각 이지만 알뿌리는 대부분 봄에 파종하는 것이 아니라 추운 겨울을 앞둔 11월 전후에 심는다. 가을을 장식했던 백일홍과 메리골드, 천일홍 등을 뽑아낸 자리에 흙을 뒤집고 고른 후 튤립 뿌리를 심는다. 혹시 겨울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싹이 올라올까 염려하나 자연의 섭리는 괜찮다고 한다. 식물들이 알아서 싹 틔우는 시기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에 한꺼번에 씨를 뿌려도 동시에 싹을 틔우지도 않는다. 참으로 신기하다. 씨앗들도 스스로 생존 전략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보다 더 긴 시간 이 땅에 살아온 지혜의 산물이다. 이를 경제용어로 위험 분산(hedge your bets)”효과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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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왔는데도 싹을 틔우지 않아 사람들은 죽었다고 판단한다. 따뜻한 봄날이 왔으니 일제히 기상하여 싹을 틔울 수도 있지만 냉해 같은 천재지변이 생길 수도 있어 시차 조절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멸종될 수 있기에 씨앗들은 한 곳에서 나왔더라도 다른 두께를 가지고 있다. 다음 해 바로 싹을 틔울 수 있는 씨앗은 얇은 껍질을, 나중에 틔울 씨앗은 두꺼운 껍질을 갖고 있다. 두꺼운 껍질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세파에 씻겨 얇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싹을 틔운다. 위험 분산 전략이다. 기회가 왔다고 그 기회를 한 번에 다 써버리지 않는다. 추운 겨울을 앞두고 언 땅을 헤집고 씨를 뿌리고 화려한 부활을 기다리는 마음, 흙을 덮는 순간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파란 싹이 두꺼운 동토를 밀어내고 올라올 것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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