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이 바라보는 산(山), 호렙산에서 부르는 음성

이시준 장로

 내가 사는 집 주변은 사면(四面)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뒷산은 국사봉이, 앞산은 우산봉과 갑하산이, 남서쪽으로는 계룡산이 빙 둘러 있다. 그리고 이름 없는 크고 작은 산들이 가까이 멀리 자리한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우산봉의 광배(光背)는 경이롭기까지 하며 홍염(紅焰)을 내뿜고 국사봉 너머로 지는 해는 장관이다. 비가 내린 후 앞산 골짜기를 휘감은 안개는 그 황홀함과 신비감을 더한다. 인자요산(仁者樂水), 즉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했던가.

 산은 늘 고요하며 침묵한다. 산은 나서거나 우쭐대지 않고 늘 있는 자리에서 겸손하다. 산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곳에 들어가면 나무가 되고 숲이 된다. 산 사나이들은 험한 산 정상에 오르면 산을 정복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산이 우리를 허락했다고 표현한다. 정상은 산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에 만 허용되는 천국이다. 산은 산에 대한 예의를 갖춘 자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그래서 산악인들은 언제나 낮아지고 겸손하다.

 인류 최초의 문자를 발명한 고대 수메르인들은 우주를 세 개로 구분하였다. 인간이 거주하는 장소인 ‘땅’, 신이 거주하는 장소인 ‘하늘’ 그 중간의 장소인 ‘산’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그래서 산은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평안을 주기도 하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혜안(慧眼)을 얻기도 한다. 이 혜안은 순간의 삶을 영원의 삶으로 만드는 인생의 길이기도 하다.

 성경은 산(山)과 아주 많은 인연을 맺는다. 중동지역에는 주요 성산(聖山)이 여럿 있다. 노아의 방주가 머문 아리랏 산,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내 산(호렙산),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모리아 산(시온 산), 예수님이 제자들과 오른 헬르몬 산(변화 산), 모세가 죽은 느보산 등이다.

 이스라엘의 영웅 모세는 왕족으로 태어났으나 세월을 무의미하게 보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동족인 히브리인을 구타하는 애굽 인을 충동적으로 살해하고, 광야로 도망친다. 그러던 어느 날, 양을 치며 멀리서만 바라보던 산, 호렙산(시내 산 2,285M)을 오른다. 호렙산은 홍해를 지나 시나이반도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이스라엘민족의 성지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7곱 번이나 오르고 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산, 모세와 아론, 70인 장로들이 하나님을 직접 뵈온 성산이다.

 모세는 어느 날 생각도 없이 양무리를 이끌고 호렙산에 오른다. 그때 그는 한 떨기나무에서 불꽃이 타는데 정작 떨기나무는 타지 않는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다. 그가 다가가자 음성이 들린다. “가까이 오지 말라. 당신이 선 그 장소는 거룩한 땅이다. 신발을 벗으라” 이 말은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그런 소리가 아니라, 모세만 들을 수 있는 ‘내면의 소리’이자 ‘침묵의 소리’였다. 모세는 자신의 서 있는 그 장소가 성스러운 장소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난 40년 양치기 생활을 통해 수없이 보아온 떨기나무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거룩’이란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자신이 일상에서 더 나은 자신을 만나기 위해 구별한 시간과 장소다. 그는 이제 양 떼를 인도하는 무명의 목동에서, 양 떼처럼 갈 길을 몰라 헤매는 동족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는 민족 영웅이 되었다. 그는 동족들을 억압과 고통의 자리에서 희망의 땅으로 인도하는 지도자가 되었다. 단풍철이다. 우리에게 산은 무엇인가, 어떤 음성이 들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