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탁자의 문화 충격과 다짐
이시준 장로
어릴 적 중국집의 자장면은 환상, 그 자체이었다. 읍내에 있는 중국집에 가본 것은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 일이다. 매년 여름방학 중에 교회별로 성경학교가 열리고, 그것이 끝나면 지방회 주관 각 교회 대표선수들이 읍내 큰 교회에 모여 ‘성경퀴즈 대회’가 열린다. 리(里)나 면(面)에 사는 학생들과 읍내 큰 교회 대표들이 모여 경쟁을 한다. 그런데 의외로 시골 작은 교회 출신 학생들이 곧잘 우승을 차지하곤 했다.
시골 교회에서는 대표 한 두 명을 뽑아 개인 교습을 집중시키기 때문이다. 무덥던 여름 어느 해, 나도 교회 대표로 출전했으나 면 소재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작은 교회에 출석한 동창생이 우승했고 나는 등외로 밀려났다.
그러나 성경퀴즈 대회보다 인솔 선생님이 사주시겠다고 약속한 중국 요리가 머릿속을 맴돈다. 면 소재지에서 볼 수 없던 2층 중국집,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 2층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별천지다. 음식 이름도 모르고 선생님이 시켜주는 대로 먹기만 하면 된다. 다른 친구들은 온갖 해물이 가득한 국수, 이름하여 ‘우동’이고 내것은 시커먼 자장면이다. 처음 먹어 본 음식, 그렇게 맛날 수가 없었다, 특히 낮은 사각형 앉은뱅이 밥상만 보았는데 의자에 하얀 식탁보에 깔린 커다랗고 둥근 탁자는 경이로웠다.
단무지와 양파가 놓인 식탁 중앙을 손으로 돌리면 반찬이 내 앞으로 상대방 편으로 순간 이동했다. 모든 것이 새롭다. 집에서 아버지와 식사하던 칠이 벗겨진 네모진 밥상과는 전혀 달랐다. 사각형의 밥상은 거칠다. 침묵의 시간이다. 어른을 중심으로 앉아야 할 자리도 서열에 따라. 구운 생선의 먹을 부위도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러나 둥근 식탁은 어느 자리가 어른의 자리고 아랫사람 자리인지 구분하지 않는다. 그때 나는 다짐했다. 나이 들면 둥근 밥상을 준비하리라. 상 · 하의 구분이 없는 밥상, 닫혀있고 각(角)짐이 아니라 열림의 마음으로 살리라.
둥근 탁자는 참 좋다. 위아래도 상하 구분도 없다. 신분의 높고 낮음도, 먼저와 나중도 없다. 관공서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의전(儀典)이다, 행사 시에 누가 상석(上席)에, 연단 중앙 앞자리에 앉느냐의 싸움이다. 잘 차려진 밥상이라도 자리 배치를 잘못하면 주최(관)자는 어려움을 겪는다. 고사성어에 ‘촉석봉정’(矗石逢釘), 즉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다. 각(角)이 많을수록 스스로 굴러가지 못하고 멈춤이 잦다. 생각이 네모지면 충돌하고 상처를 입는다. 생각이 둥글면 막힘이 없다. 동그라미(圓)는 공평하다. 단절 아닌 끊임없는 연결이다. 마주 보고 동등하게 대하고 대등하게 말하면 된다. 대장도 없고 졸병도 없다. 일방이 사라지고 쌍방이 오가니 얼굴에 화색이 돌아온다. 귀(耳)를 여니 다른 이의 생각도 들린다. 이를 상선약수(上善若水)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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