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 바퀴, 걷기의 즐거움
이시준 장로
칸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하며 사색한 것으로 유명하다. 산책은 매일 매일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격려하는 시간이다. 특히 철학자의 산책은 건강을 넘어 정신을 즐겁게 하고 영혼에 휴식을 제공하는 보배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야구의 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감독은 시합에 진 후에는 경기장에서 숙소까지 2시간 이상을 걸으면서 패인을 분석하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나는 취미도 특별히 좋아하는 운동도 또래 사람들이 즐기는 테니스도 골프도 한 적이 없다. 주말에 대전 근교인 빈계산이나 계룡산 등에 오르곤 했다.
그런데 나는 늘 바쁘게 살았다. 아마 말(馬)띠라 그런지 모르겠다. 어머님께서는 생전에 “둘째는 말띠라 늘 바쁘게 살아 살 거라고” 하며 뭔가 쫓기며 사는 아들을 변호 겸 위로해 주곤 했다. 나에게는 유일하게 운동 겸 취미? 아닌 즐기는 일이 하나 있다. 걷는 일이다. 거창하게 올레길, 둘레길, 순례길이 아닌 내가 사는 동네 골목 골목을 살피며 걷는 일이다.
산 중턱 집에서 마을로 내려가면 노후 된 마을 회관, 퇴색된 담벼락에 벽화로 장식한 이순신 장군, 논개 등과 만난다. 차량 교행도 어려운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가면 벌 조심 팻말이 붙은 이장님 댁, 작은 개가 유난이 짖어대는 높은 대문집, 수석으로 가득한 넓은 마당, 유래를 알 수 없는 ‘펀던길’을 지나 논둑길로 접어든다. 계룡산 계곡물이 모여 북으로 흘러 금강물과 합류하는 세종시와의 경계에서 방향을 전환한다. 강둑 근처에 자리한 카페며 흐려진 새마을 로고를 간직한 농협 창고, 조립식 건물의 미장원, 서원 뜰 안의 고목 단풍을 쓰다듬고 노부부의 떡방앗간, 쉼터를 표방한 무인 점포, 명맥 잇기 바쁜 중학교 담장을 끼고 동네 안 골목길로 들어선다. 북소리가 멈춘 개울 건너 무당집의 퇴색한 삼색 깃발이 처연(凄然)하다.
걷는다는 행동은 인간만이 할 수 있고 최고의 특권이다. 두 발로 서서 걸으면서 두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즉, 직립이족보행(直立二足步行)을 하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고 한다. 걷기를 좋아했던 프랑스 철학자 루소, 그는 고향인 제네바를 떠나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까지 갔을 정도로 걷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사회계약론’을 통해 프랑스 대혁명에도 영향을 끼친 그의 저서 ‘고독한 산책자의 명상’이라는 산문집이 있다.
이 책에서 그는 “나는 걸을 때만 사색을 할 수 있다. 걸음이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내 두 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라고 했다. 걸을 때까지만 내 인생이고 살아있다는 증거다. 걷는 자만이 살아있고 품격을 지킬 수 있다. 오늘도 골목길, 논두렁, 강둑을 걷는다. 침묵과 명상, 계절의 향기를 온몸으로 온전히 느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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