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다와 마리아, 누구의 생각이 옳을까?
이시준 장로
어릴 적 ‘마리아와 마르다’ 예화를 하시는 교회학교 선생님 말씀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음식을 준비하는 ‘마르다’는 꾸중을, 발아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생 ‘마리아’는 칭찬을 들어야 하는지 궁금했다. 교회에서도 늘 식당일이며 화장실, 교회 안과 밖을 청소하고 오물을 처리하는 분들은 늘 같은 분들이다.
어렵고 힘든 일은 소수분들의 ‘마르다’을 질책하는 성경 구절이 교회 봉사하는 분들의 의욕을 꺾어 버린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다. 그러나 영성의 거장 ‘게리 토마스’의 경고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의 저서 ‘내 몸 사용안내서’에서 “몸과 영혼을 함께 돌보려면 두 가지 방해물을 제거하라. 바로 탐욕과 나태다”라고 했다. 인정욕구(탐욕)와 게으름(나태)을 제거하라는 뜻이다.
가끔 스스로 묻는다. 봉사. 헌신이 다른 이를 위한 것인지, 자신이 칭찬받기 위한 행동인지, 믿는 자들의 당연한 임무요 본분인데 누구에게 잘 보이고 이쁨받고 알아주기를 원하는 행동은 본질을 벗어난 일이다. 인간인지라 누군가 알아주면 기분 좋고 보람도 느끼나 그렇지 않으면 서운하고 섭섭하게 생각한다. 봉사, 충성하면 박수받고, 칭찬받으면 기분 좋아한다. 속물근성이 발동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타적인 행동, 교회를 위한 일이 아니고 자신의 만족, 행복, 자신을 빛내기 위한 일이 아닌가 하는 불편한 생각들이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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