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매달린 마지막 잎새 털기
이시준 장로
울안에 두 그루의 단풍나무가 있다. 큰 나무는 청 단풍나무이고 작은 것은 홍단풍이다. 같이 심었는데도 하나는 제법 자라 건강하게 성장하지만 홍 단풍은 성장이 더디고 잎새가 마르고 그늘도 만들지 못한다. 마실 온 이웃분들은 물 빠짐이 원인이라 진단한다. 옮겨야 하나 베어 버려야 하나 고민이 많다. 가을 되면 나무 잎새는 홍 · 청색을 막론하고 붉은색으로 변한다. 그리고 누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한 잎, 두 잎 낙엽이 되어 어딘가로 떠날 준비를 한다. 마치 잠시 머물다 길 떠나려는 나그네와 흡사하다. 학창시절 민태원의 “청춘 예찬”과 함께 문학 소년의 가슴을 울렁이며 암송했던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라는 작품이 있다.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한다.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 뜰의 낙엽을 긁어모으지 않으면 안 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건만, 낙엽은 어느새 날아 떨어져서, 또다시 쌓이는 것이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 보다.”
겨울을 알리는 찬 바람이 분다. 붉게 물든 단풍잎이 이리저리 휘날린다. 장미 나무 밑에도 돌 틈, 화단 위에도 몇 포기 남지 않은 배춧잎 사이에도 낙엽이 살포시 앉는다. 자고 나면 뜰 안 가득 낙엽은 쌓이고 부스러지기 직전 말라버린 잎새들이 눈에 거슬린다. 빗자루로 털어버리자. 매일 매일 짜증 내면서 쓸어버리는 것보다 한꺼번에 확 털어버리자. 손수 만든 대 빗자루를 든다. 왜 미처 한꺼번에 떨구는 방법을 몰랐을까?. 그러나 그런 마음도 잠시뿐이다. 발밑에 바람 따라 뒹구는 낙엽을 무심히 바라본다. 아파트에 살던 시절 낙엽을 치우기 위해 새벽부터 가로수에 올라가 낙엽을 떨어내던 미화원들이 기억났다. 매일 매일 낙엽과 전쟁하던 그분들과 한두 그루 나무의 낙엽조차 치우기 싫어 강제로 잔인하게 나무를 흔들어 대는 자신이 무섭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삶에 대한 작은 연민도 감성도 사라진 모습이 슬퍼진다. 맞다. 고운 은행잎을 책갈피에 넣던 순수함은 벌써 사라지고 계산하고 이해타산만 고집하는구나.
나무와 바람과 자연에 반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자.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에 맡기고 흐름을 존중하자. 나무를 올려다본다. 단풍잎 하나가 내 얼굴로 향해 사뿐 내려온다. 고맙다고 고개 숙인다. 초록이 사라진 누런 잔디 위, 이곳저곳에 낙하한 단풍나무 잎새가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마치 매스게임을 하는 듯하다. 가을이 오면 세상의 모든 나무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몸을 감싸고 있던 제 살 같은 나뭇잎과 이별을 고한다. 겨울을 지내기 위해 입었던 옷조차 훨훨 벗어 버리고 나목(裸木)이 되어 찬바람과 눈보라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목격한다. 그들을 감싸자. 여름날의 그늘을 감사하자. 흔들며 내침보다 가슴으로 안아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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