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죽은 가지가 주는 의미 이시준 장로 집안에 소나무 한그루가 있다. 택지가 개발되면서 이리저리 옮겨 심은 나무이다. 집을 지은 후, 토지주에게 아직 개발하지 않은 땅에 있는 소나무 하나를 지목하여 요구했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3~4년이 흘렀을까 빈터에 집을 짓기 위해 포크레인 장비가 들어왔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사람들이 보기에 크기도 생김새도 별로인 것처럼 보이는 소나무 하나를 지목했다. 돌 틈 사이 비탈지고 외진 곳에 자리한 등 굽은 소나무이다. 완고했던 토지주의 허락이 떨어졌다.
정원에 작은 나무 몇 개만 식재되어 있었는데 대문 안 계단 옆에 크기나 모양이 잘 어울리는 소나무 한그루가 자리하니 집에 운치를 더한다. 그런데 옮겨심어 놓고 자세히 보니 소나무의 가지가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틀림이 심상치 않다. 기묘한 형상이다. 정말 풍상을 많이 겪은 나무이다.
다만 굵고 싱싱한 가지 사이에 죽은 가지가 여기저기 보인다. 눈에 거슬린다. 마른 삭정이 가지가 나무의 품격이 떨어뜨린다. 마치 잘생긴 얼굴에 검버섯이 핀 느낌이다. 톱으로 깨끗이 자르니 정리되고 매끄럽게 보이니 흐뭇한 생각까지 들었다.
몇 년이 지난 후, 여행차 소나무 군락지인 ‘안면도 자연 휴양림’에 들릴 기회가 있었다. 외모도 수려한 붉은 안면송이 장관이다. 해설사가 안면송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소나무는 햇빛이 절대 충분해야 하고 가지가 서로 겹쳐지지 않아야 한다. 수관 기피 현상(Crown shyness) 이론도 설명한다.
나무들은 가까이 자라면서도 가지와 잎이 닿지 않고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나무 숲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상단의 가지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로 띄어져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더욱 신기한 일은, 나무 스스로 자신의 가지들을 죽여가며 생존한다는 사실이다.
즉, 낙지를 만들며 내려놓음으로 나무 전체를 지킨다. 옹이와 죽은 가지는 희생과 헌신의 상처, 생존 기록이며 훈장이란다. 부분을 버림으로 모든 것을 얻는다는 것이다. 미워할 대상도 흠도 아니고 마구 잘리고 버려져야 하는 밉상도 아니다. 매끄러운 외모에 집착했던 속물 인생의 가벼움과 철학의 부재가 소나무 앞에 서기가 민망하고 부끄럽다.
소나무는 다른 나무와 느낌이 다르다. 인생 축소판이다. 악조건에서 살아남은 자의 승리 상징이다. 비탈진 환경과 돌 틈. 척박한 환경에서 죽지 않고 버티며 푸르른 기상과 고고한 자태를 잃지 않는다. 거북이 등껍질 같은 갈라짐, 뒤틀림 속에서도 허리를 곧게 세워 하늘을 향한다. 생존한다는 일이 그리 쉬운가?. 고단한 삶 그 자체이다.
칼럼니스트 조용헌 선생의 “소나무의 철학”에서 명품 소나무의 조건이 있다. 명품은 반드시 죽은 가지가 있어야 한다. 가지가 너무 무성하면 강풍이 불 때 몸체가 자빠질 수 있다. 무게를 줄여야 하기에 가지 몇 가닥은 시커멓게 죽어 있어야만 한다. 죽은 가지는 기록이다. 살기 위해 죽음을 택한 마른 가지로부터 인생의 지혜를 얻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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