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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 그리고 기약 없는 기다림
운영자 2023-10-25 추천 0 댓글 0 조회 135

 

두 아들, 그리고 기약 없는 기다림

이시준 장로

 

 1973년 서울 여의도 광장에 미국의 어느 목사님의 집회가 열렸다.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당시 재수생이었던 시절, 유일한 낙은 극동방송을 듣는 일이었다. 극동방송에 루터란 아워(Lutheran Hour)’라는 성경 강좌가 있었다. 성경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프로그램이다

 

 우표를 넣어 보내면 교재도 보내온다. 그때 방송 사이 사이에 한 번도 듣지도 본적도 없는 미국의 유명한(?) 부흥강사인 어느 목사님(빌리 그램함)의 집회를 알리는 광고가 수시로 나왔다. 어느 날 무심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탕자(蕩子)의 이야기’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 ‘집을 나간 탕자’ ‘두 아들의 비유’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등 다양한 제목의 아들 이야기를 실감 나게 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로 설교하는 주 강사보다 한국어로 적절한 감정과 힘 넘치는 통역 목사님의 음성이 나의 심장을 빠르게 요동치게 했다탕자의 비유에는 두 아들이 등장한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작은아들은 집을 떠나 낯선 고장으로 떠나고, 묵묵하게 아버지를 섬기고 따르는 큰아들은 집에 남아 주어진 소임을 다한다

 

 집 떠난 작은아들은 세상 흐름에 일찍 눈을 떠 술과 도박, 섹스와 마약 등 세상 풍조에 흠뻑 빠진다. 즐거움의 끝은 갖고 있던 재산이 거덜 난 후 멈추고 신용불량자 추락한다. 겉으로 순종하고 집을 지킨 큰아들은 매일 가축을 돌보고 포도나무를 손질하고 농사짓기에 바쁘다

 

 친구들 만나 시내에 나가 치맥 한 잔도, 영화관, 당구장, 노래방 출입도, 아버지의 눈치가 보인다. 뜨거운 햇살에 힘든 노동은 육체를 피곤하고 심신이 지쳐 일에 대한 의욕을 잃게 한다. 아버지는 두 아들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슬프고 아프다. 아들들 모습에서 가족의 친밀함과 따뜻한 부자의 정, 가족애를 찾아볼 수 없음에 신음 가득한 탄식만 토할 뿐이다.

 

 눈먼 탐욕, 차가운 복종, 이기적인 생각만 지배하는 집안이 되었다. 두 아들은 본질을 상실한 인간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수많은 상흔이 봄 가뭄의 논바닥처럼 갈라져 있다. 아버지 가슴은 아프고 슬픔만 가득하다

 

 아버지를 향한 반항, 욕구불만으로 가득한 채 자신의 몫을 챙겨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작은 아들, 한집에 살면서 말을 건네도 대답하지 않고 묵언 수행하는, 아버지를 사랑하지도 존경하지도 않고, 동생에 대한 시기와 질투에 이를 가는 큰아들, ‘당신 곁을 지킨 나는 뭐냐고 분노 가득한 얼굴로 등 뒤에서 울부짖는 악마의 모습에 차마 아들과 얼굴에 마주 대할 수 없는 아버지는 땅을 향해 얼굴을 감싸고 오열한다

 

 아버지의 생은 그저 기다림이다. 두 아들이 스스로 돌아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긴긴 시간 아버지는 문밖을 응시하는 게 일과이다. 기다림에 지칠 때까지, 아버지는 기도한다. 두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문밖에서 동구 밖에서, 고향의 품, 아버지의 품으로 귀향(歸鄕)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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