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에 앞서 피울 꽃을 준비하는 나무들 이시준 장로
집 정원에 10여 년 정도 수령의 영국 분꽃나무가 자리한다. 설천재(雪川齋)에 시집 온 지가 2~3년 정도 되었다. 가까운 이웃이 선물한 것이다. 처음 시집올 때는 수형이 그리 맘에 들지는 않았다. 몇 차례 전지하고 나뭇가지에 물병 매달아 희망 고문하는 등 나름대로 신경 쓴 결과 제법 나무다운 모양의 자세로 변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지난가을부터 잎도 아니고 꽃도 아닌 것이 50여 개나 매달려 있었다. 나무 주인에게 물어보니 꽃 순이라 한다. 새봄에 꽃을 피우려 가을부터 준비한다고 한다. 눈 내리고 바람 부는 추운 겨울 날씨에도 잘 견디어 냈다. 따뜻한 봄날이 오자 작은 꽃송이가 수백 개나 달려 어른 주먹 크기로 불어나 둥근 원형의 살찐 하얀 수국처럼 백색의 꽃이 자태를 뽐낸다.
세상이 온갖 꽃 천지이다. 홍매화를 비롯하여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 토속적인 꽃으로 시작하여 외래종들도 앞다투어 피고 지기를 시작하여 온 세상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창조자의 선물이다. 산림청의 봄꽃 개화 시기 예측지도에 의하면 3월 중순부터 봄꽃이 피기 시작하여 4월 중순에 만개한다.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는 대표적인 꽃과 나무는 주변에 흔한 진달래, 벚꽃, 개나리라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산수유, 매화,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 철쭉 순이라 한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기후 현상으로 순서도 없이 동시다발로 꽃을 피웠다.
꽃이 피어나는데도 일정한 순서나 과학적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식물은 각자 광주기호르몬을 가지고 있는데 이 호르몬은 밤의 길이를 판단하면서 꽃을 피우는 시기를 꽃이 스스로 조절하기 때문이다. 밤 길이가 길어져야 꽃을 피우는 단일식물, 짧아져야 꽃을 피우는 장일식물이 있다. 밤의 길이와 온도가 식물마다 각각 달라 꽃이 피어나는 시기도 차이가 있다. 또 신기한 것은 잎이 있을 때와 없을 때 피는 꽃도 다르다. 벚꽃이 유난히 눈에 잘 띄는 이유는 잎이 없는 상태에서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진달래 · 개나리 등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여름에 꽃을 피우는 산딸나무 · 이팝나무 · 밤나무 · 배롱나무 등은 잎이 무성해져야 꽃을 피운다. 그래서 봄꽃이 여름 나무 꽃보다 잘 기억되는 이유이다.
봄에 꽃을 피우는 나무들은 전년도 가지에 이미 꽃과 잎을 피울 에너지를 비축한 채로 겨울을 난다. 대신 여름 나무들은 잎을 먼저 틔운 후, 광합성 작용을 하여 꽃을 피운다. 식물이 봄꽃 · 여름꽃 선택을 하는 이유는 서로 경쟁을 피하기 위함이라 한다. 꽃들이 경쟁을 피하기 위한 몸부림이 인간보다 지혜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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