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함에서 출발하고 순교로 마무리하는 사도바울 이시준 장로
바울은 초기 기독교의 위대한 지도자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 무려 20,000km에 이르는 거리의 선교 여행을 다녔고, 신약성서 27권 가운데 13편의 저자 이기도 하다. 선교 여행 중에 여러 번 죽을 위기를 맞았고. 유대인에게 다섯 번 매를 맞고, 세 번의 태장, 돌로 한 번 맞고, 세 번 배가 파선했다고 기록이 전한다. 그는 유대교와 구분된 기독교를 확립했고, 특히 지성을 바탕으로 열정을 갖은 사도로 기독교 역사에 "예수가 없었다면 바울로도 없겠지만 바울이 없다면 기독교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평가를 받는 사도이다.
로마의 시민권자로 바울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히브리어 이름은 ‘사울’이다. 바울은 라틴어로 '작은', '낮은'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라 한다. 그는 소아시아 키리키아 지방 (길리기아, 현재의 터키)의 중심 도시 다소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나 최고의 강국 로마의 시민권자이고 당시 존경받는 율법학자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지성인이다. 그런 그가 다마스커스의 회심 이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이외는 모든 것을 해롭게 여기고,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한다.
그런 그도 신앙의 성숙도에 따라 신앙고백이 다르게 표현된다. 사도바울의 첫 번째 서신인 갈라디아서에서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자신을 매우 자랑스럽게 ‘사도가 된 나 바울’이라고 소개한다. 그 후 7년이 지난 55년경에 쓴 고린도 서신에는 ‘나는 사도 중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다’(고전 15:9). 또 한 8년이 지나 에베소서에서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3:8)’. 갈수록 자신을 낮추고 겸손에 겸손을 더한다. 그리고 그는 인생의 종착역이 가까워지면서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표현이 극에 달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 1:15).
지금까지 자신이 이룩한 선교의 자랑도, 영광도, 성공도, 명예도 전혀 나타내지 않은 모습이 역력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 대(大) 사도바울은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네게 주실 것이며 네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8)”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독교 선교 역사의 금자탑을 쌓은 최고요 위대한 제자, 사도바울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순교로 마지막을 장엄하게 장식하고 천국으로 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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