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잃은 바리새인의 얼굴
이시준 장로
정통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일하지 않고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날이다. 군에서 보병은 3보 이상은 뛰어야 하고, 포병은 차로 이동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유대인들은 30보 이상 걸음을 걸으면 노동으로 간주한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스위치도 누르면 안 된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지금도 건물에 따라 누르지 않아도 층마다 자동으로 서는 엘리베이터와 누를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스위치를 누르는 일도 노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조리하기 위해 오븐을 사용할 수 없고, 컴퓨터 자판사용도 금지다. 이스라엘 항공사 EL- AL은 안식일에 운항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에게는 안식일에 아픈 이를 돌 보거나 병 고치는 행위를 엄격히 금하는 율법이 적용되었다.
유대인들에게는 안식일은 상황,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아니라 규율, 형식, 절차에만 집착하여 본질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했다. 출애굽기에는 심지어 안식일에는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는 기록이 남아 있다.
본래 안식일은 고된 노동에서 1주일에 하루는 일을 온전히 내려놓고 나와 창조주와의 관계를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갖으라는 의미가 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 아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베데스다 연못 가에 38년 된 병자, 수종 병에 걸린 환자 등을 고친 일이 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병 고친 일 때문에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난한다. 예수님은 “양 한 마리가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선언하신다. 안식일이란 하나님을 위하여 있지 종교 제도, 계명 준수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하여 안식일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때론 본질을 떠난 비신앙 요소인 경력, 직분, 봉사 등 자신이 지닌 우월감에 기준 삼는 어리석음을 쫓는다. 교회 일을 열심히 하면서 나만 옳다고 다투는 일이나, 나는 열심히 하는데 다른 이는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시험에 들기도 한다. 나와 의견이 다르면 그를 향해 주저 없이 비판한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충성, 봉사, 베푸는 일에 앞장서면서도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짜증 내고, 투덜거리는 일그러진 바리새인의 얼굴을 발견한다.
누구의 강요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시작한 일인데 말이다. 어느 날 양심의 소리가 들린다. “너 교회 왜 다니니” “도대체 네 신앙의 본질은 뭐냐”. “무엇이 중헌디?”. 신앙인이 진짜로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일까?. 우리는 본질은 잃어버리고 사소한 것, 곁가지에 목숨을 걸고 있지는 않은지, 성령의 탄식 소리에 잠을 깬다. 부끄럽고 작아지는 새벽, 유리창에 빛이 들어온다. 새날이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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